2010년 5월 4일 화요일

한민족 말살 프로젝트

대한민국에서 한민족 말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하인스 워드 방한의 이면을 보아야 한다.
 
김병섭  
 
<관련 기사>
대한민국 주권침탈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다.
http://news.sidaesori.co.kr/sub_read.html?uid=32&section=section2

한국계 미식축구리그 스타 하인스 워드의 방한을 계기로 정부는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필자는 정부의 이런 정책을 적극 찬성한다.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는 차별 없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소위 기지촌이라는 오명이 붙은 지역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혼혈인들을 많이 보아왔고, 중학교 때에는 같은 반에서 같이 공부를 한 혼혈인 친구도 있었다. 그러하기에 혼혈인 문제를 보다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론 밀려들어 오는 제3세계 사람들도 숱하게 보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말 시내에 걸어 다니는 사람의 반 이상이 외국인일 정도로 필자가 사는 지역에는 외국인이 많았다.

정부가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시정하겠다는데 반대할 뜻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회적 차별 시정이라는 정책 속에 감추어져 추진되는 음모를 보아야 한다. 정부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외국인과 자녀에게 국적을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아래는 연합뉴스 4월 7일자에서 다루어진 정부 추진 정책이다.

법무부는 보고서에서 "외국인이 한국인과 사실혼 관계에 있을 경우 현행법상 국적 및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해 국내서 자녀 양육을 포기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결혼이민자 자녀와 외국인 부모에게도 국적, 영주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또 병역법 시행령 등에 규정된 `혼혈인'을 `결혼이민자의 자녀'로 개정하고 국제결혼가정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국제결혼가정 차별금지법은 인종, 피부색, 용모, 부모의 출신국가 등에 의한 차별 또는 모욕행위를 금지토록 하는 내용으로 ▲최저생계자 대상 보육센터 운영 ▲학습장애아 특별교육 확대 ▲대학입학시 일정비율 할당제 등이 골자이다. (연합뉴스. 2006. 4. 7)

지금도 위장결혼 등의 불법경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의 수는 엄청나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외국인과 자녀에게 국적을 주겠다는 것은 외국인이 합법이든 불법이든 간에 더 많이 대한민국에 들어오게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정부는 외국인이 대한민국에 들어와 한민족과 피를 섞이게 하고 싶어 안달인가? 단일민족을 강조하던 정치권이 왜 갑자기 이런 것인가? 하인스 워드 방한을 계기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런 정책을 쏟아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사실 그 동안 참여정부는 한민족과 외국인의 피를 섞게 하려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국민일보 2005년 4월 20일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정부가 출산율 저하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외국으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심도있게 검토 중인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조영택 국무조정실장은 “현재의 저출산은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경제적 사정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혼 기피나 기혼자들도 아이를 낳지 않는 쪽으로 사회풍조 자체가 바뀐 측면도 있다”며 “출산장려나 보육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어 선진국처럼 이민을 받아들이는 방안도 합리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때 “국적과 관련된 이민정책도 신중히 검토,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바 있다. (국민일보. 2005. 4. 20)

출산율 저하 문제는 다 알다시피 경제적 원인이 제일 크다. 엄청난 사교육비와 주거비에다가 경제침체가 일차적 원인이다. 이런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외부의 수혈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가 치유되지 않고는 수혈을 통해 봤자 혼란을 가중시킬 뿐인 것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내부의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 이민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가 더 많은 갈등과 문제만 발생시키고 있지 않은가?

백번 양보해서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해도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혹이 남는다. 아직도 한국은 세계 최대의 고아 수출국이다. 같은 민족도 버리는 민족이 왜 이민을 고집하는가? 외국인도 품에 안고 싶어 하는 정부가 한민족 고아는 왜 품에 안으려고 하지 않는가? 국고에 쌀이 넘쳐흘러 썩어가도 같은 한민족인 북한 동포에는 그리도 인색한 정부, 밥도 굶는 아이들도 팽개친 채 외국인을 일부러 대한민국에 끌어들이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농촌 총각의 결혼 문제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느 농촌 지역에서는 40%가 넘는 총각들이 국제결혼을 했다고 신문 1면에서 보도 된 적이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원래부터 외국인과 결혼하고 싶어 했었던 가이다. 갑자기 몇 년 사이에 농촌 총각들의 사고가 바뀌어 한국 여자를 싫어하고 외국 여자를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농촌의 피폐화가 원인이 아닌가? 이런 피폐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정부와 미국이 주범이 아닌가? 지금도 한미FTA를 강행하려는 정부와 미국이 농촌을 뭉개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사회적 강제 속에서 농촌 총각의 결혼 문제를 보아야 한다. 사실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인 김영희씨의 미국인 남편과의 만남도 사회적 강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군의 주둔과 기지촌 형성, 외화 벌이를 위한 정부의 소위 양공주 정책 등이 없었다면 하인스 워드가 태어났을까? 물론 이런 사회적 강제 속에서 태어난 2세에게 사회적 차별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국제결혼을 말릴 필요도 없을뿐더러,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과 2세들도 차별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2세의 국적은 2세가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정부는 인위적으로 한민족의 피를 외국인과 섞이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피 섞임을 통해서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훼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중앙일보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정체가 드러났다. 혈연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적 민족주의다. '한민족 되기'보다 '대한민국 국민되기'를 중요시하는 경향이다.

한국인은 자신을 한민족(64%)보다 한국 국민(77%)에 더 가까운 것으로 느끼고 있다.

한민족이나 한반도 같은 혈연.지연적 특성보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소속감이 한국인의 정체성 (正體性) 을 만드는 핵심 요소가 됐다.
남한만의 민족국가적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한국인은 진정한 한국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대한민국에서 출생'(82%)하거나 '한국인의 혈통'(81%)을 가져야 한다거나 '평생 대한민국에서 거주'(65%)하는 것보다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88%)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을 한민족으로 봐줘야 한다(28%)는 관대한 의식을 일부 갖고 있는 반면, 국적을 포기한 한국인을 한민족으로 봐주는 것엔 매우 인색하다(9%).

대한민국 민족주의, 혹은 남한만의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이전의 한국인은 북한 땅을 회복해야 하는 '미수복 영토'로 간주하거나 혹은 남북통일을 민족 결합을 위한 지상 과제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한국인은 남한과 북한이 현실적으로 별개의 독립적인 국가(78%)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중앙일보. 2005. 10. 13)

현 정부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없애고, 남한만의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만들려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굳이 통일의 정당성이 있기나 한 것인가? 사실 민족 정체성을 흐리는 정책은 다른 민족이 약소국 민족의 주권을 침탈하고자 할 때 주로 쓰던 방법이다. 일제의 내선일체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중국 한족이 50여 소수민족의 주권을 침탈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중화민족도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독자들에게 묻고자 한다. 대한민국을 한민족에서 분리시켜 정체성에 혼란을 주어 이득을 얻고자 하는 국가가 어디인가? 바로 미국이 아닌가? 이 땅의 진보주의자들은 또 다시 미국에 이용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최근 줄기세포 파동을 통해서 우리나라 상당수 진보주의자들의 한계는 만천하에 들어났다. 황우석 박사 죽이기와 국가와 민족을 우습게보아 결국 미패권주의에 도움을 주는 그런 모순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필자가 국수적인 인물로 낙인찍힐 것을 각오하고 이런 글을 쓴 이유를 부디 헤아려 주길 바란다. 제발 지금부터라도 미국의 음모를 간파하길 부탁한다. 아울러 현 정부와 언론에 포진되어 있는 숭미주의자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작업을 ‘시대소리’와 같이 하길 호소한다.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주제는 우리사회에서 다루기 난감한 주제였고, 좌와 우에서 공격당하기 쉬운 내용이었다. 또 자칫 잘못하면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지도 모를 내용이었다. 만약에 필자의 글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당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이 지면을 통해 정중히 사과한다. 그러나 언젠가 반듯이 집고 넘어가야 할 주제였고, 한민족 말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그냥 방관만 할 수는 없었다. 그러하기에 컴퓨터에 앉아 자판을 두들겼던 것이다. 아울러 좌와 우로부터 공격을 당하면서 ‘시대소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몸통정치’의 길이 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전 글에서 분명히 밝혔듯이 혼혈인에 대한 차별철폐에 찬성한다. 아울러 국제교류는 적극 증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한 국제결혼에 반대할 명분도 없을뿐더러,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도 우리사회가 차별 없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조들도 일찍이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쳐왔다.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이 이를 분명히 말해 준다. 그러나 필자가 문제 삼은 것은 억압과 강제에 의한 국제교류, 국제결혼, 그리고 민족 섞기이다. 또한 이런 억압과 강제가 미국과 한국 내 숭미세력이 공조하고,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진보주의자들의 부화뇌동을 통해 만들어 지고 있기에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숭미세력은 한민족의 피를 이어 받았지만 매국노이기에 사형제도가 존속하는 한 사형에 처해야 하며 영구히 이 땅에서 추방해야 한다. 일제시대 친일파들이 살아남아 그 자손들이 숭미세력이 되어 살아가고 계속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흩뜨리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여당의 당의장인 정동영이 부일자손이라면 말 다한 것 아닌가? 미국이 제2의 조국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야당의 정책위원장이 없지 않나, 우리가 잘 아는 방송인 출신 의원인 이계진은 WBC대회에서 우리 팀이 일본과 미국을 연파하자, 일본과 미국을 자극해 새로운 무역장벽이 생기거나 동북아 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망발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구한 말 나라를 팔아먹은 세력이 있었듯이 지금도 엄연히 이 땅에는 자신의 안일만 보장된다면 언제든지 나라를 팔아먹을 세력은 도처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과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인 김영희씨를 예로 들어 기지촌 여성들의 국제결혼이 사회적 강제에 의한 것이라고 피력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는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만 다시 짚고 넘어 가려한다. 기지촌 여성들의 국제결혼은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 그리고 반미운동단체에서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기에 굳이 여기서 설명하지 않겠다.

그러면, 왜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이 사회적 강제로 이루어지는 억압인가? 국제교류가 활발해 진 이 시기에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결혼을 할지 말지, 한국 여자와 결혼을 할지 외국 여자와 결혼을 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사회적 강제일 수 없다. 그런데 제 3세계 외국 여자와 살던 가, 혼자 살다 죽던 가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다면 이는 사회적 강제이고 억압인 것이다. 또한 농촌은 도시 보다 국제교류가 활발하지도 않기에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해 인연을 만들 확률은 더욱이 없다.

이전 글에서도 분명히 밝혔지만 이런 사회적 강제는 숭미세력과 미국이 만들어 놓은 농촌 말살이 직접적인 원인인 것이다. 지금도 숭미세력과 미국은 농촌을 말살하기 위해 한미FTA를 강제하고 있다. 우연일지는 몰라도 여당의 당의장인 정동영의 아버지가 일제시대 금융조합 서기였다니, 아버지나 아들이나 농민의 피를 말리기는 마찬가지 인 것이다. 물론 농촌 총각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2세들 때문에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불행 중 다행이나, 결혼 전까지 받았어야 할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농촌에 태어나 농촌을 지키고 살았다는 죄 하나로 당해야 할 고통으로는 너무 가혹한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필자는 자연스러운 국제결혼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자연스러운, 즉 자연스러운 국제교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연스러운 국제교류란 무엇인가? 바로 자주적 개방과 교류를 말한다. 우리 역사를 보아도 자주적 개방과 교류가 있었던 시기에는 국제결혼이 문제시 된 적이 없었고, 그러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된 경우가 있어왔다. 황제국을 자칭하던 고려시대. 벽란도를 통해 송나라 상인과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로 들어왔고 이들과의 많은 국제결혼이 있었지만 강제와 억압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어떠했는가? 수많은 고려 여인들이 원에 가서 첩살이를 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에 문제가 없었다고 할 사람이 있는가?

비단 국제결혼에 한정할 것만도 아니다. 개방도 교류도 자주적이어야 한다. 역사엔 가정이 없다지만 조선이 자주적 개방을 할 수만 있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이렇게 흘러가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티베트를 봐라. 어찌 보면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개방된 것처럼, 중국에 의해 개방된 것과 진배없다고 할 수 있다. 불과 몇 십년 전의 우리 모습인 것이다. 중국은 서부 개발한다고 티베트의 자원을 빼다가 동부 한족의 안락한 삶을 조성하는데 쓰고 있다. 마치 일제시대 일본이 조선의 쌀과 광물을 수탈해 일본으로 옮겨간 것과 너무 닮았다. 일제시대 일본은 내선일체를 주장하였고 수많은 일본인이 조선 땅에 들어와 살았다. 중국은 중화민족이라는 허구의 민족개념을 만들어 놓고 티베트에 티베트족보다도 더 많은 중국 한족을 이동시켰다. 중국 한족과 티베트족, 그리고 한족과 티베트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이 섞여 살 티베트. 티베트에 과연 평화와 행복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민족을 주장하면 국수적이고 폐쇄적인 것인가? 그러면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다 국수적이고 폐쇄적이었던 것인가? 북한에 김정일 정권이 무너져 자칫 잘못해서 중국의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서면 안 되는 이유를 티베트는 너무나 선명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서로 다른 성질의 국제교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한류’라는 자연스러운 국제교류이며, 또 하나는 숭미세력과 미국이 강제하는 ‘한미FTA’라는 국제교류이다. 한류는 누가 강제하거나 억압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또한 한류를 통한 국제교류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한미FTA는 다르다. 미패권주의를 공고히 할 뿐 한국 민중과 더불어 전 세계 민중에게 고통을 안겨 줄 것이다.

국제교류, 국제결혼. 둘 다 국가가 온전히 서 있을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국가가 자주적인 개방과 교류를 이끌어 나갈 때, 혁신이 싹 트고 사회가 발전한다. 그러나 국가가 온전하지 못 할 경우에는 외세에 의해 억압을 당하게 되고, 이런 외세의 책동 중에 하나가 민족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지금 민족 섞기를 주도하는 세력은 숭미세력과 미국이다. 이번 하인스 워드 방한을 계기로 인권이라는 가면을 쓰고 인위적인 민족 섞기를 추진하고, 결국 민족 정체성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정부, 여야에서 추진되는 법 제정이 그것이고, 숭미세력이 판을 치는 조중동을 필두로 이에 부화뇌동하는 진보계열 언론들이 만들어 내는 우리 스스로의 부정이 그것이다. 침입을 많이 받아서 40%는 혼혈인이라니, 이제 단군 자손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하는 주장이 여지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사실 1,000년 이상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 온 중국 한족이 거의 대부분 혼혈족이지, 왜 몇 십년 지배 받은 적 밖에 없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인가? 외부에서 피 좀 수혈 받았다고 근본부터 굳이 뭉개야 속이 시원한 것인가? 중고등학교 다닐 땐 식민지 사대교육만 받고, 대학에서는 교조주의 좌파 책만 머리에 새겨 놓은 탓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분노할 때는 자랑스러운 고구려의 후예를 자청하던 우리가 아니던가?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 너무 우려된다. 북한은 중국에 넘어간들 어떠하리. 남한은 미국에 넘어간들 어떠하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김병섭, 시대소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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